콘텐츠 3줄 요약
모든 대화는 상황, 감정,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이루어지며, 리더가 이 중 상황만 다투면 소통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됩니다.
부하직원과의 승진 관련 어려운 대화를 겪은 한 리더의 코칭 사례를 통해, 자신의 관점과 상대방의 관점 모두에서 이 세 층위를 짚어보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어려운 대화 나누는 법의 핵심은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감정, 정체성이라는 세 층위에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소통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조직과 리더가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 커뮤니케이션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큰 정부 단체 리더인 M씨에게 코칭을 받는 이유와 목적을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팀원들과 어렵거나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좀더 잘 커뮤니케이션 했으면 좋겠어요." 그 리더는 지난 30년 간 맡은 일에서 큰 성과를 냈을 뿐만 아니라, 팀원들로부터 '가장 인간적인 리더'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온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팀원과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한 팀원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 인사 평가를 전할 때마다 고역이었고, 나름대로 애를 써서 전달해도 팀원이 실망하거나 화난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습니다.
리더십 코칭이나 팀 문화 컨설팅을 하다 보면 "저희는 팀 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어요", "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향상시키고 싶습니다"와 같은 토로를 자주 듣습니다. 어쩌면 커뮤니케이션은 신뢰, 문화와 함께 조직 내 문제를 설명할 때 리더들이 가장 많이 꺼내는 단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 팀원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 종류에 따라 '인사 평가 시 피드백 잘 주고받는 법', '협상 잘 하는 법', '프레젠테이션 잘 하는 법'처럼 다양한 방법을 수업이나 책으로 배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벗어나면 또 다른 소통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대화에 존재하는 3가지 층위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상황, 감정,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조직 내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때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 세 층위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상황(Context):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배경과 전후 사실 관계, 의도, 행동을 내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감정(Feelings): 이 상황에 대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언어로 드러나지 않아도 상호작용을 좌우하는 감정은 무엇인가.
정체성(Identity): 이 상황이 내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유능한가',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는 존중 또는 사랑받을 만한가'라는 자기 인식의 질문 중 무엇에 관한 것인가.
리더 M씨의 사례에 적용
상황: 무슨 일이 있었는가
리더 M씨는 지난 인사평가에서 바로 아래 고위 관리자 A씨에게 승진시켜줄 수 없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A씨는 오랫동안 이번 승진을 크게 기대해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직급의 B씨가 훨씬 더 큰 성과를 냈고 더 좋은 피플 리더였기에, M씨는 A씨가 아닌 B씨를 승진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M씨가 A씨에게 승진을 보장한 적은 없었지만 A씨는 크게 실망했고, 최근 업무 의욕도 떨어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M씨가 하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왔고, 다른 리더들에게 M씨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감정: 이 상황에 대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리더 M씨는 일단 화가 났습니다. 조직 기준에 따른 결정인데 이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A씨가 실망스러웠습니다. A씨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A씨가 이 승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잘 알기에 지난 2년간 열심히 일한 것에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리더로서 제한된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A씨와의 관계가 지금과 같을 것 같아, A씨를 대하는 게 힘들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정체성: 이것은 어떤 자기 인식의 질문에 관한 것인가
이 상황에서 리더 M씨는 스스로가 무능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껄끄러운 이야기라도 부하 직원에게 하기 어려워하는 것 자체와, 직원의 기대치 설정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무능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자신은 직원 입장을 잘 헤아리고 대해주려 애쓰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A씨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한 것 같아 결과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 층위로 생각해본 리더 M씨는, 정체성 층위의 문제가 자신으로 하여금 A씨와의 소통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M씨에게는 팀원들에게 유능하고 좋은 리더가 되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 리더십 원칙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최선이 모든 팀원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가정과 '좋은 관계는 곧 분쟁이 없는 관계'라는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부하 직원과의 어려운 대화, 상대방 관점에서 다시 보기
그렇다면 A씨의 관점에서 이 세 층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어진 코칭 세션에서 M씨에게 부하 직원 A씨의 관점으로 위 세 층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상황: A씨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할까
M씨가 생각해보니, A씨가 받은 인사 고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어느 일보다 A씨는 지난 2년간 맡은 프로젝트에 몸과 마음을 다해 쏟아부었다는 걸 M씨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M씨는 평소 A씨에게 이 프로젝트가 캘리포니아 정부와 주민에게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래서 A씨는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쓰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프로젝트에 A씨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조직이 자신의 노력과 성과를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결론 지은 것처럼 느꼈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감정: A씨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처음 M씨가 결과를 전했을 때 A씨는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동료 B씨가 대신 승진했다는 걸 알게 된 후 다시 찾아와 해명을 요구했을 때, M씨는 A씨가 얼마나 화가 났고 실망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B씨가 상대적으로 더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는 해명에, A씨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열등감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상관인 M씨가 평소 좀더 코칭해주었다면 자신이 승진할 수 있었을 거란 원망도 했을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조직이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비관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체성: A씨에게 이것은 어떤 자기 인식의 질문에 관한 것일까
지난 10년의 커리어 중 이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는데, 성과를 냈음에도 승진하지 못한 결과는 A씨로 하여금 '나는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의심하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부하 직원 A씨의 관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볼지, 이 상황을 어떻게 느낄지, 어떤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할지 생각해보니 리더 M씨는 몸과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A씨와의 1:1 면담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예전만큼 힘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A씨의 관점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세 층위로 자신과 상대의 관점을 살펴보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입장을 더 잘 관철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느라 시야가 좁았다면,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가보다 '둘 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여전히 껄끄러운 감정은 남아 있었지만, 이 상황에 대해 좀더 잘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두 관점 비교로 보는 3가지 층위
M씨와 A씨, 같은 상황을 두 사람이 각자의 3가지 층위로 어떻게 다르게 경험했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층위 | 리더 M씨의 관점 | 부하직원 A씨의 관점 |
|---|---|---|
상황 | 기준에 따라 B씨를 승진시킨 정당한 결정 | 2년간 쏟아부은 노력이 부정당한 예상 밖의 결과 |
감정 | 실망, 미안함, 리더로서의 회의감 | 배신감, 열등감, 조직에 대한 비관 |
정체성 | 나는 무능하고 형편없는 사람인가 | 나는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
커뮤니케이션의 근본 목적, 전달이 아닌 소통
소통한다는 뜻의 영단어 communicate는 '공동'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communis에 기원합니다. communicate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의 교류를 만들어내기 위한 소통입니다. 커뮤니케이션으로 마음의 교류를 통해 함께 무언가 공유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맞고 당신은 틀리다'는 걸 밝히는 건 아무리 논리적이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근본 목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근거와 증거를 들어 이야기해도 이 세 층위를 고려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입장 사이의 이견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과 전달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소통(疏通)은 막힘이 없이 서로 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로 소통의 소(疏)는 발 소(疋)자를 품고 있습니다. 발로 먼저 다가가야지, 자기 뜻과 입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논리로 방어벽을 더욱 단단히 하거나, 자기 뜻을 전달해 상대방이 그대로 하길 기대하는 건 소통의 자세가 아닙니다. 말이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옮겨 이르게 한다는 전달(傳達)은 소통의 일부일 수는 있으나, 조직에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온전히 실행하지는 못합니다.
지금 리더로서 팀에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의사만 전달하고 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지 답답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소통을 위해 위와 같은 세 층위를 파악하며 먼저 다가가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지 한 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 세 층위를 실제 대화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코칭을 통해 이해하고 연습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정서지능' 관련 글을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김미루 | 스타트업 리더십 코치
20여년 미국 Big Tech 경험 바탕으로 한미 스타트업 리더들의 성장을 돕는 코칭 전문가
『The Placeholder』 저자이며, 현재 샌프란시스코 거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