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언보싱 현상, 어떻게 해결할까?
콘텐츠 3줄 요약
✅ 54.8%의 직장인이 임원 승진을 원하지 않는 '의도적 언보싱'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 책임 부담과 역할 혼란으로 고민하는 리더들의 공통점은 자기이해 부족이다.
✅ 개념화된 자기를 넘어 관찰자 자기로 접근하는 자기이해가 근본적 해결책이다.
리더, 정말 하기 싫어요
최근 코칭 현장에서 만난 두 명의 리더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리더를 그만두고 실무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치로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리더십은 대부분이 원하는 것 아닌가?'라는 내 안의 전제는 오산이었다.
실제로, 2023년 잡코리아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1,114명 중 54.8%가 임원으로의 승진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임이 부담스럽다'(43.6%)는 점이었다. 이는 최근 늘어나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는 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있다. 즉, 일부러 중간관리자가 되는 것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현상이다.
의도적 언보싱, 단순한 기피가 아니다
의도적 언보싱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이는 리더십 자리에 내재된 '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무게'를 보여주는 신호다. 필자가 만난 두 리더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드러낸다.
A 리더 – 대기업 IT팀장은 성과 압박을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서 극심한 부담을 느꼈다. 그는 팀원에게 "더 하라"고 강요해야 하는 상황에 괴로워했고, 결국 팀원과의 소통을 마주하기 어려워 메신저 소통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말했다. "원치 않았어요. 이럴 거면 리더 안 하고 싶어요."
B 리더 – 스타트업 팀장은 스스로 리더로서의 역량에 부족함을 느끼며 실무자 역할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리더로 올라오면서 잘해내던 실무에서 멀어지자 오히려 본인의 존재 가치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리더가 된 이유를 고민해보아도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는 불안정한 자기 정체성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리더를 계속하는게 맞는걸까요?"
자기 이해 부족이 만드는 의도적 언보싱
이러한 리더들의 '리더를 그만하고 싶은 마음'은 단지 스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의 부족에 있다. 의도적 언보싱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외부의 기준이나 과거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틀에 따라 행동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나는 다른 리더들처럼 소통을 잘 못해."
"나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남들만큼의 리더십이나 강점이 없어."
이러한 문장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과거 경험, 타인의 피드백, 사회적 기대 등이 반복적으로 내면화된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반복되며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고정된 자기 이야기를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직 시도하지 않은 가능성조차 제한하게 된다. 의도적 언보싱을 선택하는 승진 대상자들과 실제 선임된 리더들은 자신의 리더십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셈이다. 더 시도해볼 수 있었던 도전, 더 확장될 수 있었던 영향력을 부정적인 자기 인식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정된 자기 개념은 실제 자신의 모습이나 잠재력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실처럼 인식되며 현재의 자신을 제약하는 틀이 되어버린다. 이런 고정된 자기 인식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자신에 대한 설명이 오래되고 익숙하며 생생하지 않게 느껴진다. 말 속에 스스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자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것들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생각과 마음이 바쁘거나 혼란스럽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이러한 평가의 '내용'을 넘어서서, 그 내용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에 접근할 때 가능하다. 이는 내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갖고 있든, 그 너머에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자기이해 지능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다중지능 이론'에서 '자기이해 지능'을 제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이해는 자신의 감정, 욕구, 강점 등을 잘 인식하고 다루어 효율적으로 삶을 조율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리더십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이해 없이는 진짜 변화도, 건강한 지속도 불가능하다. 의도적 언보싱 현상 역시 결국 이 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두 리더의 전환점, 자기 이해가 열어준 가능성
🙋🏻♂️ A 리더는 성과 압박의 막막함을 경험하며 리더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 아래, 자신이 팀원과 진정한 소통을 갈망하며, 일방적인 지시자가 아닌 진정성 있는 성장의 촉진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B 리더는 자격과 역량에 대한 자기 의심 속에 리더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였지만, 오히려 실무자 혹은 리더, 그 어떤 자리에서도 기여하고 싶다는 깊은 열망을 발견하였으며, 역할 상실의 불안을 새로운 자기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탐색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의도적 언보싱을 선택하려는(리더를 내려놓고 싶은) 이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정말 '리더'가 하고 싶지 않은게 맞으신가요?
리더십의 출발점은 자기 이해다
의도적 언보싱은 리더십 회피가 아니라, 더 깊은 자기를 향한 질문의 시작일 수 있다. 자기이해를 통해 당장 리더를 하고 싶어지거나, 불안과 스트레스가 즉시 사라질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 언보싱을 선택하게 만드는 관점은 변화될 수 있으며, 때로는 아주 빨리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리더들의 개인적 경험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되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기 이해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 자기 이해는 문제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문제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의도적 언보싱 시대, HR과 조직의 대응 방안
개인 차원에서는 정기적인 자기 관찰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10분씩 자신의 감정, 반응, 의사결정 패턴을 기록하고 관찰하기를 권한다. 또한 개인의 핵심 가치와 리더로서 추구하고 싶은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단순 스킬 중심이 아닌 자기 인식 중심의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조직 차원에서는 리더들이 고민과 실패를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신임 리더들을 위해 역할 전환 초기 6개월간 집중적인 자기이해 기반 리더십 교육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1:1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과 그룹 코칭 세션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도적 언보싱을 유발하는 조직 내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조직문화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조직의 건강한 리더십 문화를 회복시키는 핵심이다. 의도적 언보싱 현상은 결국 리더들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려 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리더십이야말로 의도적 언보싱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