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스타트업 리더십의 핵심, 스토리 사고
AI 시대, 인간만의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ChatGPT에게 "팀원과 갈등이 있는 임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보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요? 아마 일반적이고 무난한 조언들이겠죠.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세요",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세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같은 말들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스타트업 현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매순간 정답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같은 문제처럼 보여도 관련된 사람들의 성격, 회사 상황, 시장 환경이 모두 달라서 천편일률적인 해답은 통하지 않죠.
올해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기계발서 『Primal Intelligence(근원적 지성)』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흥미로운 주장을 합니다. "인간은 이야기로 생각한다(People think in stories)"는 것입니다. 25년 전 뇌과학자에서 "스토리 사이언티스트"로 전향한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과거 경험을 스토리로 엮어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한다고 합니다.
뇌과학이 밝혀낸 인간의 사고 메커니즘
우리의 뇌가 가장 집중하는 역할은 바로 미래 계획 수립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끊임없이 세우는 미래 계획은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죠. 이때 과거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거 스토리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분명해지면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항상 변하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에게 맞는 결정을 내리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데 필수적이죠.
플레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스스로에게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 과거 경험에 근거한 내러티브에 존재하는 분명하고 일관적인 주제를 인식한다면, 그를 바탕으로 매순간 옳은 결정을 내리고 미래를 효과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인지력(Narrative Cognition)"은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없거나 희박한 상황에서도 슬기롭고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데이터에만 의존해야 하는 AI가 구현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입니다.
스타트업 리더에게 특히 중요한 이유
이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새로운 제품 기능을 개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투자를 받아야 할지, 어떤 투자자와 만나야 할지, 공동창업자에게 어떻게 피드백을 줘야 할지, 어떤 직원을 내보내고 누구를 고용해야 할지, 비용절감을 위해 어떤 예산을 줄여야 할지, 피봇을 해야 할지 아니면 현 사업을 접어야 할지...
이렇게 매일 크고 작은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종종 중요한 정보 없이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때 과거 실패로 인한 두려움에 근거한 결정을 내리거나, 문제를 일으킨 팀원이나 공동 창업자에게 화가 나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정을 우물쭈물 미룰 수도 있죠. 하지만 창업가 스스로의 이야기 인지력이 충만하다면 어떨까요?
스타트업 리더가 갖춰야 할 4가지 근원적 지성
플레처 교수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근본적인 지성이 이야기 인지력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1️⃣ 직관력(Intuition): 패턴을 벗어난 신호 포착하기
직관력은 단순한 '감'이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능력으로, 기존 패턴만 인식하는 AI 모델의 인식을 넘어섭니다. 인간의 직관력은 평상시 법칙과 규범을 벗어난 특이한 정보(Exceptional Information)를 알아차리고, 이를 통해 그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규칙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이유와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죠.
스타트업에서는 시장 데이터가 말하는 것과 다른 고객 반응, 경쟁사의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이 바로 직관력입니다. AI는 기존 패턴에서만 학습하지만, 인간의 직관은 예외 상황에서 새로운 규칙을 발견합니다.
2️⃣ 상상력(Imagination): 무한한 시나리오 그리기
다양한 미래 경우에 대한 "왜?"와 "만약에?"를 더욱 구체화하고 확장하여, 우리 뇌가 현재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에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가정해볼 수 있도록 촉진합니다. 과거에 일련의 똑같은 경험을 해도 인간의 미래는 모두 달라집니다. 과거의 똑같은 경험들을 직접 오감으로 체험하며 느끼는 감정, 배우는 점, 주변 상황 등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이러한 무한대의 경우의 수는 알고리즘화하기 어려우므로, 상상력은 인간에게 고유합니다.
투자 유치에 실패했을 때 단순히 "다른 투자자를 찾자"가 아니라, "이 실패가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어떤 부분을 재검토할 기회일까?" "완전히 다른 방향의 수익 모델은 없을까?"까지 상상하는 것입니다.
3️⃣ 감정조율력(Emotion): 감정을 정보로 활용하기
두려움, 분노, 수치감, 상실감 등의 감정은 우리 행동과 상황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평가하도록 도와주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제시해줍니다. AI 시스템은 감정을 언어 모델을 통해 학습할 뿐, 매순간 직접 느낄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감정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새로운 파트너십 제안에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면? 그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구체적 우려사항들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합니다.
4️⃣ 분별력(Common Sense):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분하기
ChatGPT와 같은 AI 챗봇은 구조적으로 "모르는 정보"를 연산에 상정할 수 없어서, 우리가 흔히 겪는 "환각" 증세를 보이거나 거짓 답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접하면 모른다는 인지를 하고 이를 기준으로 상황을 분별합니다.
분별력은 우리가 처한 환경과 문제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정보와 익숙하지 않거나 모르는 정보가 무엇인지 가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익숙한 상황에서는 자신감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낯선 기회나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스타트업 리더에게는 "내가 확실히 아는 영역에서는 빠르게 결정하고, 불확실한 영역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별력이 필수입니다.
실제 사례: 갈등하는 CPO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상황: 이 스타트업 CEO는 현재 제품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CPO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제품 팀의 다수 팀원들로부터 CPO에 대한 불평불만을 지속적으로 들어왔고, 직접 피드백을 줘봤지만 CPO의 행동은 거의 1년째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CPO는 업무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서 서비스 런칭 일정에는 문제가 없지만, 팀원 및 동료들의 계속된 안 좋은 피드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CEO는 코칭 세션에 "이 CPO를 내보내야 할지 말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라는 고민을 가져왔습니다.
직관력 활용: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특이점이 뭘까?"
CEO는 CPO가 팀원 및 동료들과 업무상 필요한 미팅 외에는 개인적인 면담이나 점심 식사, 저녁 식사 같은 사교적 자리는 전혀 함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회식 자리에도 CPO는 가급적 식사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거나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죠. CEO는 CPO가 내성적인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성격적 이유 외에 다른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CPO가 이끄는 팀에 상대적으로 더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닐까 궁금해졌습니다.
상상력 발휘: "해고 외에 다른 시나리오는?"
CEO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들을 상상해봤습니다.
첫째, CPO와 팀원들 사이의 소통 문제라면 CPO가 팀원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이 경우 CPO에게 본인이 편하고 하고 싶은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둘째, 팀원들 중 CPO와 그나마 개인적으로 잘 소통할 수 있는 중간 리더를 찾아 이 리더가 CPO와 팀원들 사이 소통을 도와주고 연결해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도록 팀 구조를 바꾸는 것.
셋째, CEO가 직접 팀원들과 CPO 사이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
감정조율력 적용: "내 두려움과 분노가 말하는 것은?"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한 후에도 CEO는 현 상황에 대해 화가 났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CEO는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CPO가 조직에 잔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CPO에게 개인적으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CEO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미래에 분명한 해결책이 딱히 없다고 믿는 관점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CEO는 자신이 느끼는 분노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가 원하는 한 가지 방안만을 고집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CEO는 이 CPO를 고용하면서 "이렇게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내 스타트업에 오다니!"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 CPO가 자신과 이 스타트업에 과분한 사람인 것처럼 보고 있기에 두렵고 화도 난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분별력 발휘: "내가 정말 모르는 것은?"
CEO는 CPO의 진짜 속내가 궁금했습니다. 매번 이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CPO는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CPO와 1:1로 사무실 밖에서 만나서 안전한 환경에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를 먼저 갖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만약 이 결과로 CPO가 떠나게 된다 해도 이는 CPO의 선택이므로 CEO 본인이나 이 조직의 실패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사고"로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이 CEO가 애초에 상정한 문제는 "이 CPO를 내보내야 할지 말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였습니다. 사실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는 상황을 지극히 단순하게 요약한 문제였죠. 문제를 간결하게 정의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풀고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적 상황에 대해 위와 같이 풍부하게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문제에 대한 미래의 선택지도 다양해지고,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서도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플레처 교수는 이 전체를 "이야기 사고(Story Think)"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미국 육군 특수부대 및 실리콘밸리,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다양한 교육 기관에 이야기 사고를 적용함으로써 이 중요성과 발전 가능성을 증명해왔습니다. 이 이야기 사고를 잘하기 위해 그 누구도 특별한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위 네 가지 근원적인 지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단지 이를 인지하고 좀 더 잘 사용하면 됩니다.
스타트업 리더의 일상 속 이야기 사고 적용법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 및 기업의 리더들이 코칭 세션에 가져오는 대부분의 문제는 모두 어떤 곤경에 "빠져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 같은 경우입니다. 문제의 정도가 심각하거나 굉장히 급박한 상황인 경우가 많기에, 많은 분들은 좁은 시야로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컴퓨터의 알고리즘처럼 어떤 공식을 대입해 빨리 솔루션을 찾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은 단순히 논리적으로 공식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ChatGPT 같은 AI 챗봇에 물어봐도 일반적인 답변이 돌아오는 건 비슷한 문제적 상황이라 할지라도 관계된 사람들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황 | 기존 접근법 | 이야기 사고 접근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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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치 실패 | "다른 투자자 찾기" | "이 실패가 들려주는 우리 비즈니스의 진짜 이야기는?" |
핵심 팀원 이탈 | "대체 인력 채용" | "떠나는 팀원의 시각에서 본 우리 조직 문화는?" |
제품 피봇 결정 | "시장 데이터 분석" |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가설 스토리는?" |
매출 목표 미달성 | "마케팅 예산 증액" | "우리 고객들이 구매 결정을 미루는 진짜 이유는?" |
당신만의 리더십 스토리를 써나가세요
매일 같이 풀어내야 하는 수많은 문제와 내려야 하는 중요한 결정을 마주하는 리더로서, 문제 해결을 좀 더 잘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여러분 스스로의 직관력, 상상력, 감정 조율력, 그리고 분별력을 적용해 직면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 사고해보길 권합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고유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여러분의 네 가지 근원적 지성이 진정한 차별화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당면한 문제를 '이야기'로 생각해보세요. 그 문제에 대해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에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면 유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김미루 | 스타트업 리더십 코치
20여년 미국 Big Tech 경험 바탕으로 한미 스타트업 리더들의 성장을 돕는 코칭 전문가
『The Placeholder』 저자이며, 현재 샌프란시스코 거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