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3줄 요약
생성형 AI는 중간관리자의 실무 속도를 올려주지만, 팀원과 함께 일하던 중간 과정을 조용히 지워버린다.
AI 시대에 필요한 첫 번째 역량은 AI를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답을 다시 의심하고 검증하는 능력이다.
중간관리자의 경쟁력은 혼자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사람에게 남기고 누구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결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퇴사율이 높은 중소 규모 조직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입사하자 회사는 두 명의 팀원을 배정해 주었다. 각각 사회생활 1년 차와 2년 차였다. 둘 다 업무 의욕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고, 이전에 퇴사를 고민하며 면담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나는 대기업에서 10여 년을 근무했고,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만 20년 가까이 된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팀원들과 나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조직문화에 대한 기대도 달랐고, 일을 바라보는 기준과 속도도 달랐다.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런데 업무를 맡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설명하고, 확인하고, 수정하고, 다시 피드백 해야 했다.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과 팀원을 성장시켜야 하는 상황이 계속 충돌했다. 중간관리자는 경영진이 정한 방향과 실무 현장 사이에서 팀의 성과와 구성원의 성장을 동시에 책임지는 자리이고, 이 두 가지는 좀처럼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중간관리자의 딜레마를 더 깊이 다룬 글)
AI는 왜 '훌륭한 부하직원'처럼 느껴졌을까
그 무렵 처음으로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속이 후련했다. AI는 훌륭한 부하직원이자 동료처럼 느껴졌다.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하면 정리했고, 초안을 써 달라고 하면 썼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드백을 주었다. 그러면 불평도 하지 않고 즉시 수정해서 다시 내놓았다.
"이 부분은 좀 더 논리적으로 구성해줘." "다른 관점에서 검토해줘." "이 자료를 보고서 형식으로 다시 정리해줘."
몇 번의 대화만으로 결과물은 계속 개선되었다. 마치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좋은 점만 있는 걸까?
AI는 일을 잘하지만, 책임까지 대신 지지는 않는다
첫 번째 문제는 AI의 환각, 즉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었다.
내가 잘 아는 영역이라면 비교적 문제가 적었다. 결과물을 보고 오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틀린 부분을 수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었다.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조사할 때는 결과물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 업무를 맡겼을 때는 어느 정도 티가 난다. 논리의 흐름이 어색하거나 자료 간 연결이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작동한다. 그런데 AI는 다르다. 자료 수집 과정에 오류가 있어도 그 빈틈을 상당히 그럴듯하게 채워낸다.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아도 문장은 매끄럽고 논리적이다.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설득당하기 쉽다.
AI가 확산되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AI를 다룰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다. AI로 인해 업무의 내용과 요구되는 역량 자체가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AI에 많이 노출되는 직무에서도 관리적, 인지적, 정서적, 디지털 역량의 중요성이 함께 변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Green, 2024)
그래서 AI 시대 리더십의 출발점은 AI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AI의 결과물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I에게 질문하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AI의 답변에 다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결과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없는가?"
"우리가 놓친 변수는 무엇인가?"
AI 시대의 팀장은 답을 가장 빨리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답과 그럴듯한 답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벌어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나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준 것은 직원 육성이었다.
과거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관리자는 일이든 사람이든 둘 중 하나만 잘해도 훌륭한 거야."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말이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나는 분명히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업무 속도는 빨라졌고,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팀원들과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팀원에게 일을 맡기고, 결과물을 기다리고, 부족한 부분을 함께 검토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AI를 활용해 많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그 중간 과정이 줄어들었다. 내 업무는 편해졌다. 그러나 팀원들의 성장은 더디게 느껴졌고,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직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조직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자신감을 잃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해버리거나 AI와 함께 해결하는 편이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그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중간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AI에 빠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많은 일을 하는 것과 더 많이 성장하는 것은 다르다
생성형 AI 활용은 분명히 개인의 업무 역량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OECD가 7개국 5,0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직원의 업무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했다. 동시에 생성형 AI는 기존의 기술 격차를 보완하는 데 활용되는 한편,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갖추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과제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OECD, 2025).
여기에서 중간관리자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AI가 직원의 일을 대체하고 있는가, 아니면 직원이 더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AI가 팀원의 부족한 결과물을 대신 완성해주면 당장의 성과는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팀원은 무엇을 배우는가? 반대로 AI를 활용해 새로운 일을 시도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질문하고 검증하고 수정하도록 한다면 AI는 훌륭한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
AI가 팀원을 성장시키는 도구가 되었을 때
실제로 내 팀원 중에는 피드백에 유난히 취약한 사람이 있었다. 작은 피드백이나 교육에도 경직되거나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업무 결과물을 수정해 달라고 하면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AI 활용법을 알려주고 업무를 맡겼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AI와 함께 탐색하기 시작했다. 엑셀 함수부터 매크로, 보고서의 구성 방식까지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했다.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보는 상황은 부담스러워했지만, AI에게는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었다.
물론 AI에게 업무를 맡겼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아니다. 나는 중간중간 진척도를 확인했다.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함께 점검했다. 특히 그가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AI에게 무엇을 물어봤는지를 함께 살펴보았다. 그가 쓴 프롬프트를 보면서 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지 이야기했고, 때로는 내 업무 경험과 지식을 설명해주었다.
"이 업무는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해."
"AI에게 이렇게 질문하면 결과가 더 좋아질 수 있어."
"지금 네가 필요한 건 정보를 더 많이 찾는 게 아니라, 이 자료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거야."
그리고 함께 프롬프트를 수정하는 방향을 논의했다. 그는 내가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업무에서는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응용했다. AI에게 질문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졌고,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업무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그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의 팀원 성장은 단순히 AI를 잘 쓰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AI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도움과 팀장이 제공하는 업무 맥락이 함께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AI는 언제든 질문에 답해주었다. 하지만 그 답이 우리 조직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데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했다. 반대로 내가 모든 것을 직접 가르쳐주었다면 그는 짧은 시간에 그만큼 많은 것을 탐색하지 못했을 것이다.
AI는 그에게 자유롭게 탐색할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탐색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 경험은 내 생각을 바꾸었다. AI는 직원 육성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잘 활용하면 오히려 개인화된 학습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이때 중간관리자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중요해진다. 모든 것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이 스스로 탐색하도록 돕고 필요한 순간에 업무의 맥락을 제공하며 막힌 지점을 함께 풀어가는 사람이다. 생성형 AI처럼 기술의 역량과 활용 방식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중간관리자는 구성원의 업무를 통제하기보다, 변화하는 도구를 활용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Leonardi, 2023).
AI 시대의 중간관리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AI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중간관리자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역할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자료를 요약하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는 팀원이 왜 방어적으로 반응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지금 실패를 두려워하는지, 어떤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AI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도 성장의 기회를 설계하는 일까지 대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팀장 리더십의 질문도 달라질 것 같다.
모든 일을 직원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을 AI에게 맡길 필요도 없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는 AI가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시간과 여유를 어디에 쓸 것인지는 팀장의 선택이다. 그 시간을 더 많은 업무로 채울 수도 있고, 사람을 이해하고 피드백하고 새로운 일을 맡기며 구성원이 성장할 환경을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다.
나는 후자가 AI 시대 중간관리자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팀장에게 실무적인 날개를 달아준다. 하지만 날개를 얻었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 우리는 중간관리자가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AI가 일을 더 잘하게 만들수록, 팀장은 사람을 더 잘 성장시켜야 한다. AI 시대에 중간관리자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와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을 남기고 누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김정석 | 조직·리더십 코치
대기업 10년의 현장 실무 경험과 심리학 박사로서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결합하여 리더와 조직의 변화를 이끄는 코칭 전문가
『직장 10년, 회사를 떠납니다』 저자 / 한국코치협회 KPC 인증 코치